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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션

(픽션) 허공을 미는 사람들 - 에피소드 2, 허무한 성공 - 2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이름, 집단, 사건은 허구이며 실존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Author: flowkater


에피소드 2: 허무한 성공 - 2


[수요일, 오전 9:47] 박 팀장 - 부서장실에서

심호흡을 했다. 습관이다. 이 문을 열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석 달 동안 이 문을 몇 번이나 열었는지 모르겠다. 열 때마다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부서장실로 들어섰다. 부서장님이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계셨다. 나를 쳐다보지는 않는다. 평소 습관이다. 창 너머로 판교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늘은 흐렸다. 여름도 아니고 딱히 더운 날씨도 아닌데 에어컨 바람이 천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부서장님, 찾으셨습니까.”

“아, 팀장님. 앉아요.”

자리에 앉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이상하다. 평소에는 서서 보고하고, 서서 지시받고, 서서 나간다. 그게 패턴이었다.

어색하게 의자를 잡아당겼고 엉거주춤하게 의자 끝에 걸터 앉았다. 부서장님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봤다. 최근 기억에 없는 표정이다. 활짝 웃는 표정이다.

“팀장님, 수고했어요.”

괜히 안심이 된다. 프로젝트 시작하고 처음 듣는 말이다.

“감사합니다.”

“프로젝트 잘 마무리했더라고요. 어제 최종 릴리즈 확인했어요.”

“예, 어제 저녁 일곱 시에 완료했습니다.”

“팀원들도 고생 많았고.”

부서장님이 책상 위 서류를 집어 들었다. 뭔가 적힌 종이였는데 멀어서 안 보였다. 손가락으로 종이 모서리를 톡톡 두드렸다.

“대행업체에서 연락 왔어요.”

의자 팔걸이를 잡았다. 대행업체. 우리 소프트웨어를 팔아주는 곳. 주말에 같이 일한 건 대행업체가 아닌 외주 검수 업체였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거대한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판매 대행업체의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쪽 반응이 어떤지가 중요했다.

“시장 반응이 좋을 것 같대요.”

부서장님은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분명 그들의 평가를 전달하는 건데, 나의 동의를 얻는 듯한 말투였다.

“정말요?”

내가 반문했다.

“응. 대박 날 거라고. 기능도 잘 갖춰져 있고, UI도 깔끔하다고.”

손바닥에 땀이 났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헛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팀원들한테도 전하겠습니다.”

“그래요, 전해줘요. 다들 고생했다고.”

부서장님이 서류를 내려놓고 모니터를 다시 보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클릭. 또 클릭. 화면이 바뀌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무언갈 말하길 기다렸으나 부서장님은 더이상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다고 바로 나가라는 눈치도 아니다. 그저 화면을 보고 딴청을 피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지금 부서장실에 온 건 토요일에 말씀하신 건 때문이다. 팀원들은 아무말도 없었지만 매일 같이 야근, 새벽 퇴근, 주말 출근에 불만이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상태였다. 사실 토요일에만 무언갈 챙겨주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프로젝트 시작 시기에 부서장님은 팀원들을 3개월을 1년처럼 보내게 만들기만 한다면 끝나자마자 보상을 챙겨주겠다고도 했다.

그 뒤에 프로젝트로 정신이 없었지만 토요일 말씀때문에 나도, 팀원들도 기대가 생겼다. 끝나면 넉넉하게 챙겨주겠다고. 고생한 만큼 보답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뭘 해주겠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다들 알아서 해석했다. 보너스. 유급 휴가. 밀린 연차는 말할 것도 없고. 석 달 고생했으니까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그 말 믿고 팀원들한테 전했다. 그 말 믿고 다들 일요일에 나왔다. 아니, 3개월을 그렇게 일했다.

부서장님이 모니터만 보고 계셨다. 계속 아무 말이 없었다.

에어컨 소리가 들렸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순간 공기의 흐름이 멈춘 것 같았다.

“저기, 부서장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살짝 매였다.

“예?”

부서장님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저번에 말씀하신… 팀원들한테 챙겨주신다고 한 건요.”

부서장님 마우스 위에 올려놓은 손이 멈췄다. 검지가 살짝 들렸다가 내려왔다.

침묵. 에어컨 바람이 서류 모서리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챙겨준다는 거요?”

부서장님이 나를 쳐다봤다. 안경 너머로. 아까와 다른 눈이었다.

“예. 토요일에 넉넉하게 보상 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될지… 금액이라든가, 유급 휴가 기간이라든가요.”

“아.”

부서장님이 등을 의자에 기댔다. 두 손을 깍지 끼고 배 위에 올렸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성과급 말하는 거예요?”

성과급. 처음 듣는 단어였다.

“예… 그런 것도 포함해서요.”

부서장님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일단 판매 성과가 나와야 책정할 수 있어요.”

”…네?”

잠깐. 아니, 제발.

“지금은 개발만 끝난 거잖아요. 실제로 팔려야 성과가 나오는 거지.”

사실 그게 무슨 보답이냐 성과급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매일매일 팀원들에게 정말 고생했고 조금만 버티면 된다라는 공허한 외침들이 더이상 공허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슴이 급격히 답답해졌다.

“그럼… 언제쯤…”

말 끝을 흐렸지만 목소리가 매이지는 않았다.

“글쎄요. 대행업체 쪽 일정이라서. 빠르면 두세 달? 늦으면 더 걸릴 수도 있고.”

두세 달. 늦으면 더.

창밖으로 저 멀리 구름이 펼쳐져 있다. 구름이 움직이지 않으니 하늘이 멈춘 것 같다. 바람이 없는 날이었다.

“팀원들이 기대하고 있어서요. 석 달 동안 정말 고생했고…”

“나도 알아요.”

부서장님이 내 말을 끊었다.

“근데 팀장님, 성과가 있어야 성과급 아니에요?”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난 한번도, 아니 적어도 절대로 “성과급”을 기대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애초에 납품하고 넘기는 거였다. 고객이 누군지 모르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정말 끝내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부서장님도 끝나기만 하면 이라는 말을 정말 자주했다.

뭔가 잘못됐다. 넉넉하게 챙겨주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당연히 약간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일도 끝났겠다, 밀린 연차에 붙일 만한 유급 휴가도 괜찮다. 꼭 보상이 돈이 아니어도 된다. 석 달 고생한 거에 대한 보상. 팀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부서장님이 꺼낸 건 성과급이었다. 같은 말 같지만 다른 말이었다. 이미 끝난 석 달에 대한 대가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판매 실적에 달려 있었다.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예. 알겠습니다.”

자동이었다. 뭘 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연차도요.”

나는 안 좋은 예감에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일단 쓰지 말라고 해요.”

”…예?”

“대행업체에서 수정 요청이 들어올 수 있어요. 판매하려면 몇 가지 손봐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정리 안 됐는데, 이번 주 내로 목록 올 거예요.”

예상은 했다. 그래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더 남았다고 하니까 가슴이 옥죄어온다.

“크게 어려운 건 아닐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팀원들 대기시켜 놔요.”

크게 어렵지 않은 기능들. 부서장님은 항상 그 말로 자신의 기획 사항을 관철시켰다. 그 말을 석 달 동안 몇 번 들었는지 모른다. 항상 어려웠다.

“그럼 연차는…”

“수정 작업 끝나고 쓰면 되죠. 길어야 일주일 정도 걸릴 거예요.”

일주일. 크게 어렵지 않은 기능들은 보통 하루에서 3일의 기한이면 충분했지만, 어떤건 3주에서 한달도 걸렸다.

당분간은 휴가를 쓰지 못한다. 추가 휴가가 아니다. 원래 있는 연차다. 석 달 동안 한 번도 못 쓴.

“알겠습니다.”

또 그 말이 나왔다. 알겠다. 알겠다.

“팀원들한테 잘 전해줘요. 조금만 기다리라고.”

석 달 동안 지겹게 했던 말이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사실 원래 일정대로라면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솔루션에서 약간의 기능만 더해서 두달 전에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부서장님과 판매 대행업체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요구사항을 합의했고, 그건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솔루션과는 아예 다른 방향의 제품이었다.

대행업체 미팅때 부서장님은 얘기했다.

“금방 됩니다.”

그 금방이 석 달이 됐고, 석 달이 또 얼마가 될지 모른다.

“예.”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아, 팀장님.”

문을 열려고 했는데 부서장님이 불렀다.

“예.”

“오늘은 그래도 일찍 보내줘요. 칼퇴시키고. 내일부터 대기니까.”

칼퇴. 베푸는 것처럼 들렸다.

“예. 알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왔다. 문이 닫히고 복도에 혼자 섰다. 형광등이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팀원들한테 뭐라고 말하지.

보너스가 아니라 성과급이었대. 판매 성과 나와야 한대. 언제인지 모른대. 유급 휴가 얘긴 없었대. 밀린 연차도 못 쓴대. 수정 작업 있을 수 있으니까 대기하래. 그래도 오늘은 칼퇴해도 된대.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안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버튼을 안 눌렀다. 그냥 서 있었다. 스테인리스 문에 얼굴이 비쳤는데 누구 얼굴인지 모르겠다. 문 위에 긁힌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누가 짐을 부딪힌 자국인지, 사람이 긁은 건지.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오 년 전에 끊었는데. 요즘 자꾸 그 생각이 났다. 입술이 마른 느낌. 필터를 무는 감촉. 그런 게 떠올랐다.

일 층 버튼을 눌렀다.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가는 게 아니다. 그냥 거기 서 있으려고.


흡연실은 비어 있었다. 건물 옆 구석. 재떨이 하나. 꽁초가 수북했다. 누군가 아침부터 피운 모양이다. 필터에 립스틱이 묻어 있는 것도 있었다.

건물 벽에 기댔다. 차가웠다. 하늘이 보였다. 흐린 하늘.

지난 토요일에는 장모님 생신이었다. 나는 식사를 제때하지 못하고 계속 부서장님의 전화를 받고, 팀원들에게 주말 출근을 독려했다. 밥을 뜨다 말다 전화하다가 결국 해가 저물어 마무리하고 거실에 가니 아이들이 케이크에 초를 꽂고 있었다. 하루종일 불편한 마음과 처가 식구들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프로젝트 잘 끝나면 넉넉하게 챙겨줄게. 고생한 만큼 보답하겠다고 했으니까.

사실 내가 느끼는 안도감은 내 개인적인 보상이 아니었다. 그건 애초에 바라지 않았다. 나는 팀장이다. 다만, 보상같은 거 없어도 그저 시키는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 팀원들에게 뭐라도 할 말이 생겨서 안도했다.

그 말을 팀원들한테 전했다. 일요일에 나와달라고 하면서. 마무리만 하면 된다고. 넉넉하게 챙겨준다고.

가슴이 답답하다. 설레면서 다녔던 순간도 있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건물 곳곳 구석구석 아니 판교라는 지역 전체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든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 재떨이 주변으로 담배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밖인데도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보았다. 10시 3분. 아마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부서장실에 올라간 걸 알고 있으니 돌아오면 뭔가 해줄거라고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일 분만 더.

벽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재떨이 위로 연기처럼 보이는 것이 흔들렸다. 착각이었다. 아무도 안 피우고 있었다.

일 분이 지났다. 또 일 분이 지났다. 바람은 여전히 불지 않았다.

올라가야 한다.

벽에서 등을 떼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 층.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호흡을 했다. 부서장실 앞에서 하는 것과 같은 심호흡이었다. 이 문이 열리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부서장이 아니라 팀원들 앞에서.

문이 열렸다.

복도를 걸었다. 사무실 문이 보였다. 유리 너머로 팀원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김 대리가 모니터를 보고, 하 과장이 커피를 마시고, 정 대리가 뭔가를 적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평범하게 만들어야 했다.

문을 열었다. 표정을 만들었는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좋은 소식을 먼저 말하자. 대행업체 반응 좋다고. 부서장님도 잘했다고 하셨다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자리를 향해 걸었다.


[수요일, 오전 10:15] 김 대리 - 사무실에서

팀장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사무실 유리문 너머로 복도에서 이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걸음이 느렸다. 평소 팀장님은 걸음이 빠른 편이다. 항상 뭔가 쫓기듯이 걸었다. 지금은 달랐다. 발을 끌듯이 걸었다.

문이 열렸다.

팀장님이 안으로 들어와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마주친 것 같았다. 시선이 나를 통과한 느낌이었다. 눈이 멍했다. 부서장실에서 내려오신 것 같은데, 뭔가 맞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팀장님이 내 자리 앞을 지나가는데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이상했다. 팀장님은 담배를 안 피우신다. 끊은 지 오래됐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묻어온 건가. 신경이 쓰였다가, 쓰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지 않고 우리 쪽을 둘러봤다.

“다들 잠깐.”

이 과장이 천장 보던 시선을 내렸다. 하 과장이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정 대리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의자를 돌렸다. 윤 사원도 고개를 들었다.

오전 열 시. 부서장실에 갔다 온 직후. “다들 잠깐.”

이 패턴을 안다. 전에도 그랬다. 이 말이 나오면 좋은 소식인 적이 없었다. 지난 석 달 동안 한 번도.

팀장님이 입을 열었다.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어떤 표정인지는 읽기 어려웠다. 웃는 건지 아닌 건지.

“부서장님께서 잘하셨다고 하셨어. 대행업체 반응도 좋대.”

정 대리 얼굴이 밝아지고 하 과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진짜요? 좋은 소식이네요.”

정 대리가 말했다. 2년차니까. 아직 그럴 수 있다.

하 과장이 바로 물었다.

“그럼 이제 챙겨주신다는 거 나오는 거예요?”

토요일에 팀장님이 단톡방에 올렸다. “부서장님 말씀으로는 프로젝트 끝나면 넉넉하게 챙겨주신다고 합니다.” 다들 그걸 보고 각자 해석했다. 보너스. 유급 휴가. 밀린 연차. 넉넉하게라는 말이 주는 여백을 기대로 채웠다.

나는 그 메시지를 읽고 아무 반응을 안 달았다. 넉넉하게 챙겨준다. 구체적으로 뭘? 금액? 기간?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 챙겨준다는 말은 약속이 아니다. 그냥 좋은 말이다.

팀장님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사무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천장에서 바람이 내려왔다. 누군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종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챙겨준다는 게… 성과급이었대.”

침묵.

“판매 성과가 나와야 책정할 수 있다고. 지금은 개발만 끝난 거라서.”

하 과장의 손이 커피 잔 손잡이 위에서 멈췄다.

”…언제요?”

“대행업체 일정이라서. 빠르면 두세 달, 늦으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그럼 그렇지.

충격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놀라지 않았다. 토요일에 그 메시지를 보고 반신반의했던 나는, 반 쪽이 맞았을 뿐이었다. 성과급.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알았다. 이건 보너스가 아니다. 성과가 나와야 나오는 돈이다. 전 회사도 그랬다. 성과급은 실적 연동이다. 우리 프로젝트는 아직 한 건도 안 팔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봤다.

정 대리의 밝았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의자 팔걸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윤 사원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는데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 과장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원래 없다. “뭐 그렇지.” 그런 얼굴이었다.

하 과장이 입을 열었다.

“토요일에요.”

하 과장 목소리가 낮았다. 평소 하 과장은 목소리가 크다. 농담 할 때도, 불만 얘기할 때도. 지금은 낮았다.

“토요일에 부서장님이 직접 넉넉하게 챙겨주신다고 하셨잖아요.”

팀장님이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볼펜을 집어 들었다 내려놓았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저한테도 일요일에 나오라고 전화하셨잖아요.”

하 과장이 말했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팀장님이 전화해서 나와달라고 했다. 하 과장은 거절했다. 한 달 전부터 잡아둔 일정이 있었다. 두 번째 전화가 왔다는 것도 안다. 하 과장은 안 나왔다.

“그랬는데 언제인지 모른다고요?”

팀장님이 대답하지 않았다.

팀장님한테는 요즘 이상한 습관이 있다. 상대방의 말이 안 통하면 가끔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복도 쪽에서 다른 팀 사람이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멀어졌다. 사라졌다.

하 과장이 뭔가 더 말하려는 것 같았다. 입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한 번 더 열었다.

”…됐어요.”

그 한마디였다. 하 과장이 커피 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다시 내려놓았다. 모니터를 봤는데 화면에 뭐가 떠 있는지는 안 보였다.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다들. 넉넉하게 챙겨준다는 말을 듣고 각자의 기대를 담았다. 보너스. 유급 휴가. 쉴 수 있다는 희망. 그게 성과급이라는 단어 하나로 바뀌었다.

나는 처음부터 회의적이었다.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보너스가 나온다고 해도 석 달 동안 남의 코드를 복사 붙여넣기 하면서 느꼈던 허전함까지 채워지지는 않는다.

팀장님이 한 가지 더 말했다.

“대행업체에서 수정 요청이 올 수 있대. 아직 확정은 아닌데, 이번 주 내로 목록이 온다고.”

하 과장이 코웃음을 쳤다. 소리가 들렸다. 짧았다.

“그래서 일단 연차는 수정 작업 끝나고 쓰라고 하셨어.”

연차. 밀린 연차다. 석 달 동안 한 번도 못 쓴. 추가 휴가가 아니다. 원래 있는 연차. 그것조차 대기.

이 과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뭐 그렇지. 놀라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얼굴.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윤 사원은 눈치만 보며 주변을 슬쩍 둘러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6개월차. 이런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정 대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수정 기간이 어느 정도예요?”

“일주일 정도래.”

일주일. 그 일주일이 두 주가 되고, 한 달이 되는 걸 석 달 동안 봤다. 팀장님도 알고 있을 것이다.

팀장님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부서장님이 칼퇴하라고 하셨어. 일찍 가.”

칼퇴. 석 달 고생한 대가가 칼퇴 하루.

사무실 창 너머로 판교의 건물들이 보였다. 흐린 하늘 아래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어디서든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았다.


[수요일, 오후 6:03] 김 대리 - 사무실에서

여섯 시가 됐다.

팀장님이 말했다. “오늘은 일찍 가.” 퇴근하라는 게 아니라 허락하는 것 같은 톤이었다. 부서장님이 시켰다는 말을 굳이 붙인 것도 그렇다. 우리가 일찍 가는 게 아니라, 일찍 보내주는 것이다.

하 과장이 제일 먼저 일어나서 가방을 챙기고 컴퓨터를 껐다. 인사를 안 했다. 아무한테도. 의자를 밀어 넣지도 않고 빠르게 사무실 문 너머로 사라졌다.

이 과장이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들고 “수고하세요” 하고 나갔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정 대리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밝은 목소리였다. 억지는 아닌 것 같았다.

윤 사원이 뒤따라 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기계적이었다. 말투가 아니라 타이밍이. 정 대리가 일어나서 인사하니까 따라 한 거다. 신입이니까.

사무실이 비었다. 나와 팀장님만 남았다.

팀장님이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 뭐가 떠 있는지는 안 보였다. 모니터 불빛이 얼굴에 비쳤다. 형광등 아래 얼굴이 더 피곤해 보였다. 눈 밑에 그늘이 졌다.

나도 가방을 챙겨야 했다. 컴퓨터를 끄고, 일어나서, 인사하고 나가면 된다. 간단한 동작인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닌, 다른 말. 팀장님도 힘들었을 거라는 말. 하지만 그런 말을 어떻게 꺼내는지 몰랐다.

팀장님이 이쪽을 봤다.

입을 열었다.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입술이 움직이다 멈췄다.

나는 기다렸다.

팀장님이 시선을 내렸다. 책상 위를 봤다. 손가락으로 마우스 옆을 한 번 두드렸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시 나를 봤다.

”…내일 보자.”

그게 전부였다.

“예. 내일 뵙겠습니다.”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여섯 개 책상에 아무도 없는데 불만 환했다. 모니터들은 꺼져 있고 팀장님 모니터만 켜져 있었다. 빈 사무실에 형광등 소리가 미세하게 울렸다. 지직, 하는 소리. 석 달 동안 매일 들었는데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수요일, 오후 7:08] 김 대리 - 퇴근길

지하철에 앉았다.

평소보다 일찍 나온 건 맞는데 이상했다. 석 달 동안 매일 자정이나 늦을 때는 새벽에 퇴근했다. 이른 날이 열 시였다. 늦은 날은 새벽 3시도 넘었다. 그게 일상이었다. 일곱 시에 지하철을 타니 어색했다. 간만에 퇴근 시간이라 북적인다. 지난 3개월 동안 외딴섬에서 일한다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직장인이 된 것 같다. 어색했다. 새벽 퇴근 때는 그래도 법인 카드로 택시를 많이 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퇴근 길은 새벽이 더 편했다. 출입문 가까이 사람들 틈에 몸을 기대고 간다.

창밖으로 어두운 터널이 지나갔다.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눈 밑에 그늘이 있었다. 팀장님 얼굴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핸드폰을 꺼내서 GitHub 앱을 열었다. 개인 계정. 잔디가 텅텅 비어 있고 하얀 칸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지막 커밋이 아홉 달 전이었다. 입사하고 한 달쯤 됐을 때 사이드 프로젝트에 올린 게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예전에는 퇴근하고 코드를 짰다. 새로운 기술을 써보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오픈소스에 PR을 올렸다. 전 회사 때다. 그때는 퇴근이 일곱 시였고, 집에 가면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지금은 퇴근하면 침대에 눕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멍하니 본다. 뭘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러다 잠든다.

지하철이 역에 멈춰서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문이 닫히고 다시 움직였다.

이직해야 하나. 생각은 계속 한다. 1년도 안 됐다. 열 달. 이력서에 열 달짜리 경력은 좋지 않다. 최소 1년은 채워야 한다. 아니, 3년은 되어야 한다고, 그게 상식이라고 한다. 근데 지난 3개월은 거의 3년 일한 것 같은데. 또 그 시간이 반복된다.

수정 대기. 대행업체 요청 대응. 복사 붙여넣기. 변수명 바꾸기.

이런 거였나.

핸드폰 화면을 껐다. 하얀 잔디밭이 사라졌다. 검은 화면에 다시 내 얼굴이 비쳤다.

지하철이 내릴 역에 가까워져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석 달 동안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하고, 밤새 남의 코드를 고쳤다. 끝났다고 했다. 대행업체 반응이 좋다고 했다. 부서장님이 잘했다고 했다.

대가가 뭔지 물었더니 성과급이라고 했다. 언제 나오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쉴 수 있냐고 물었더니 대기하라고 했다.

문이 열렸다. 내렸다.

역에서 원룸까지 오 분. 편의점을 지나고, 골목을 꺾고, 계단을 올랐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어두웠다. 불을 켜니 좁은 방이었다. 침대, 책상, 옷걸이. 그게 전부인 공간. 책상 위에 개인 노트북이 닫힌 채 먼지가 쌓여 있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사이드 프로젝트 하겠다고 가져다 놓은 건데,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신발을 벗고 침대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았다.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대기하라고 했다. 수정 요청이 올 수 있다고. 성과급은 언제인지 모른다고. 석 달 고생한 대가가 그거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주황색이었다. 원룸 창문은 작았다. 불빛도 적었다.

시간이 8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씻지도 않고 다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니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열어도 같은 어둠이었다. 화가 나거나 슬프면 그래도 뭔가 느끼는 건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일은 온다. 준비 같은 건 상관없이.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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